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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작업은 도시 속의 작은 공원에서 시작되어 나뭇가지와 잎, 그리고 그 사이 배경을 통해 나를 둘러싼 감정과 여정을 담아내고 있다. 자본주의적 개념이 우리를 식민지로 삼아 우리 자신을 소외시키는 것에 대한 의문과 현대 사회에서 지배적인 개념인 생산성과 효율성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제시한다. 도시 숲 안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고요하고 잠잠한 상태가 곧 평온함, 조용함, 도피처, 치유의 공간이 될 수 있음을 말하며, 이는 현대 일상의 소외와 불안에 맞서는 나의 작업의 중심 주제로 이어진다. 작품 속에서는 소비 주체로서의 자본주의에 국한된 공간에서 불안이 점유한 현실을 도시 숲을 통해 탐색하고, 도시 생활 속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평온함을 공원에서 발견하는 순간을 담아내고 있다. 작업에 담긴 도시 숲의 화려한 색채는 현실과 대조를 이루며, 도시와 소음은 작품의 배경에서 뒤섞여 나타난다. 치열하고 과열된 도시 생활 공간 안에서 고요한 숲의 풍경을 통해 나타나는 감정은 다양한 붓질과 색으로 표현되고 있다. 지속적인 의미와 목적을 찾기 위해 도시 속 숲의 공간을 헤매는 작업은 불안의 현실 속에서 유용하다고 여겨지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사이의 균형을 탐색하고자 하는 의지와 함께 이어진다. 작업을 통해 나타나는 조용한 숲 속에서의 경험은 도시 생활의 소음과 고요함 사이에서 균형을 찾고자 하는 지속적인 탐색의 일환이다.

 2017년도 스스로의 쓸모를 중명 해 보기 위해 작업하던 모든 것을 그만두고 회사에 다니기 시작했다. 더 이상 작업이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출퇴근 시간에 맞추어 움직였다. 회사에 다니며 알 수 없는 답답함을 느꼈던 나는 자연스럽게 출근길과 퇴근길에 마주치는 공원 두 곳을 거쳐 가게 되었다. 집에서 회사가 있는 지하철역까지 대략 40분 그리고 지하철역에서부터 회사까지 10분 정도를 더 걸어야 하는 출퇴근 길이었다. 하지만 나는 공원 두 곳을 거쳐 가기 위해 집에서 약 15분 정도 더 일찍 나와 지하철역에서 회사로 향하는 길에 있는 두 곳의 공원을 거쳐 지나갔다. 그때의 나는 그 공원에서 조금이나마 숨이 트이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살기 위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공원에 자리한 식물들에 둘러싸여 알 수 없는 안정감을 느꼈다. 항상 답답한 기분을 느끼는 날들의 연속이었기 때문에 바쁜 생활 속에서 종종 간과되었던 도시 속 작은 공간들은 나에게 의미 있는 장소가 되었다. 도시 속 작은 공원은 치열한 도시 생활을 버티게 해줄 구원의 장소가 되었다. 그렇게 간신히 버티던 어느 날 출근하던 지하철에서 공황 증상이 시작되었고 더 이상 이런 삶은 버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때가 와서야 쓸모에서 벗어날 용기가 생겼다. 다시 작업을 할 이유가 생겼다. 회사를 그만둔 다음날 가장 먼저 한 일은 집 근처 한강 공원에 나가 시간에 제약 없이 걷는 일이었다. 작은 숲에 둘러싸여 있는 동안 숨이 쉬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내 삶을 어렵게 만든 것은 무엇이었을까? 검은색 랩핑으로 가려져 해가 들어오지 않는 사무실, 빽빽한 건물 사이에 있는 작은 서울 집, 출퇴근 시간에 사람들로 가득 차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 지하철의 등의 환경과 더불어 존재의 불분명함 그리고 쓸모의 유무 등 모든 불안이 나를 에워싸고 있었다. 사회적인 쓸모를 찾아 항상 바쁘게 보내던 매일의 일상이었다. 스스로의 쓸모를 돌아볼 여유가 전혀 없었다. 그사이 나도 모르게 많은 것들이 상실되어 가고 있었다. 그 상실감은 나를 가두는 데 충분했다. 어떤 방향으로 향해가는지도 모르고, 모두가 그렇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여 치열하고 바쁘게 생산성과 효율을 쫓아다녔다. 회사 생활을 그만둔 나는 도시 생활을 벗어나 도시 숲을 헤매며 안정과 타협을 찾아갔다. 2020년 팬데믹이 시작되던 시기였다. 팬데믹으로 인해 빠르게 돌아가는 도심이 잠시 멈추어진 듯 보였고 도심 속에서 벗어나 하루 종일 숲속만을 헤매는 나를 이상하게 보는 이가 하나 없던 시기였다. 도시를 벗어나지 못하고 얽매여 있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불안을 도심 속 공원을 통해 해결하며 도시 속 작은 자연만으로도 충분히 안정된 감정을 느낄 수 있음을 깨달았다.

 

 자연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의 힘이 더해지지 않고 스스로 존재하거나 우주에 저절로 이루어지는 모든 존재나 상태'이다. 도시 속에서 마주하는 자연이라고 이야기하는 풍경 중 어느 하나 사람의 힘이 더해지지 않은 것은 없다. 스스로 존재하는 듯 보이나 인위적으로 어딘가에서 길러지고 이동되어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이 장소에 옮겨 심어진 자연이다. 서울 한복판에서 찾은 자연은 자연이라고 부르기에는 모자란 모습을 가지고 있었지만 내겐 충분했다. 이러한 경험은 나를 소외된 일상에서 해방시키고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한 하나의 시도로 이어진다. 처음 인식한 도시 숲은 현실의 불안에 대한 도피처와 탈출의 장소였다. 하지만 공원에 오랜 시간 머물며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자연이라고 불리우는 장소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그대로의 쓸모가 생김을 깨달았다. 그저 가만히 머무름으로 인해 내 존재가 인식되어 가고 있었다. 비로소 평온함을 찾은 것 같았다. 도시 숲에서 머무는 행위는 조용하고 고요한 순간의 가치를 인식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경험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접근과도 일맥상통한다. 소로는 자연 속에서의 삶을 통해 개인의 자유와 독립성을 찾으며, 자본주의 사회의 가치관을 돌아보게 한다. 마찬가지로, 나의 작업도 도시 속 자연을 통해 개인의 안정과 평온을 찾고자 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결국, 나의 작업은 소외된 자본주의 공간에서 내 자신의 주체성을 찾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도시 속 작은 자연들이 내게 주는 삶의 의미와 연결점을 탐색하고자 함이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의 소외와 불안에 대한 이해와 대응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나아가는 작업으로서, 예술을 통해 사회적 구조와 개인의 존재에 대한 깊은 물음을 던지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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